만화기자에 대한 몇 가지 오해들.

2003.04.24 10:30

Ilyo Um 조회 수:2497

Frequently Asked Questions.


- 그럼 만화 잘 그리시겠네요?
  출판사 직원이 소설 쓰는 거 봤습니까? 스포츠신문 기자가 프로야구 선수 겸업합디까?
  만화는 만화가가 그립니다. 만화기자는 만화잡지를 편집하지요. 물론 작품기획, 스토리, 콘티, 데생, 터치, 톤처리 등 작품이 만들어지는 전반적인 과정에 관여하기는 합니다만, 직접 만화를 그리지는 않습니다. 만화가가 소설가라면, 만화기자는 출판기획자이자 비평가이자 첫번째 독자인 셈이지요.

- 만화 실컷 보시겠네요. 일이랍시고 만화 보고 좋겠네요.
  예. 실컷 봅니다. 신입 때 회사 들어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이 만화잡지 과월호 읽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일이랍시고' 만화를 보기 때문에 일반 독자들처럼 편히 즐기면서 읽을 수가 없습니다. 스토리 흐름은 자연스러운지, 연출은 이해하기 쉬운지, 동세가 어떤지, 감정 유도와 조절은 잘 되는지, 하다못해 띄어쓰기는 정확한지까지 꼼꼼히 따져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특히 교정·교열 같은 경우는 직업병입니다. 맞춤법 틀린 문장을 보면 화가 나요― 영 재미없습니다. 제대로 몰입할 수가 없어요.

- 만화책 싸게 살 수 있나요?
  이론상으로는 가능합니다만, 절차가 복잡해서 아무도 시도해본 바가 없다고 하더군요. 할인율도 20%밖에 안 되고, 팀장-국장-이사-사장 결재에 영업부 협조까지 줄줄이 사인 받아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습니다. 차라리 그냥 빌려오는 게 나아요. 영구임대 형식으로 말이죠. ^^ (어허∼ 누가 훔친다 그래?)

- 유명한 만화가들 사인 좀 받아주세요.
  유우∼명한 만화가들은 출판사에 거의 출입하지 않습니다. 원고는 문하생 시켜서 가져오고, 편집부와 연락은 전화나 이메일로 해결하지요. 높으신 분들 엉덩이 무거운 건 여기서도 예외 없습니다. 제가 3년 동안 일하면서 얼굴이나마 얼핏 본 유명 만화가는 양재현 씨(<열혈강호> 그림작가. 이 사람은 자기 원고는 늘 자기가 들고 온다. 하지만 마감은 늘 꼴찌다. 따라서 양재현 씨 얼굴이 보이면 아, 「영챔프」 마감이 이제 끝났군, 하고 알게 된다) 정도입니다.

-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던데.
  그건 만화출판사마다 다르고, 또 잡지 팀별 분위기 따라 다릅니다. 제가 다니는 곳은 짤 없습니다. 이사가 눈 시퍼렇게 뜨고 9시 출근을 체크하니까요. 마감이 새벽 5시에 끝나도 다음날 아침 출근은 정상적으로 해야 합니다. 나요? 나야 뭐∼ 우리 팀장이 제것은 절대로 챙겨먹어야 한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마감이 늦게 끝나면 다음날 오후 출근 정도는 봐주는 편입니다. (쳇, S모 출판사는 제 할 일만 하면 오후에 나오든 오전만 근무하든 상관없다던데)

- <슬램덩크> 후속편 나오나요?
  이노우에 다케히코 씨가 그리겠다고 밝힌 적은 없습니다. 비공식적인 소식통에 의하면 다시 그리고 싶지 않다… 고 하더군요. 부담스럽거나, 질렸거나, 그런 게 아닐까요? 뭐 하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알 수 없는 거니까요.



나는 만화가게에서 일합니다.
취미가 직업이 돼서 좋겠습니다, 라는 인사말은 무지와 착각의 합작품이다.

  사실, 꿈이 현실이 되고 난 뒤에는 허탈하다. 꿈이 직업이 되어버리면 원래의 트로피컬 색깔을 잃어버리고 일상의 잿빛에 묻혀버리기 일쑤다. 총천연색 꿈의 빛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현실에 접목시키고 차근차근 그 빛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기란, 엔간한 투지와 스태미나를 지닌 사람이 아니고서야 정말 쉽지 않다.

  졸업반 때의 나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던 대학 4학년 겨울. 가진 거라곤 오기밖에 없었다. 뭘 만드는지도 모르는 거대기업에서 부속품처럼 끼워 맞춰져 돌아가지는 않겠어. 평소 입지도 않는 정장에 낯선 분칠을 하고 매뉴얼대로 생긋거리며 면접을 보지는 않을 거야. (그 면접 매뉴얼이란 것이, 치마 길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며 색은 어떤 계열이 호감을 주고 화장과 머리 모양은 어떻게 해야 하며 출산과 육아 문제에 관한 한 요령껏 피해가라는 둥의 어처구니없는 물건이었다) 연봉은 중요하지 않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다! 그런 식으로 이것저것 제하고 나서 남은 이상과 현실의 타협지점이 만화출판사였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정확히 손에 잡히며 그 전 과정을 직접 컨트롤하고, 평소 즐기던 만화 보는 게 직업이니 이 얼마나 행복할쏘냐… 당시는 낭만적인 투지에 불타올라 있었다.

  그러나, 취미가 직업이 되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만화출판사는 꿈의 공장이 아니며 기업의 이익이 최우선인 사적 소유물일 뿐이다. 아무리 작품성 있는 만화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면 잡지에 실을 수 없다. '좋은 만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제작단가와 판매부수에 의해 무참히 꺾인다. 예를 들어, 요리를 소재로 한 만화 가운데 가장 공정하고 진보적이면서도 만화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은 <맛의 달인>의 경우 현재 제작부수가 겨우 4천 부이다. 다 팔려도 손익분기점에 못 미친다. 거의 모든 만화잡지가 제작부수의 50%도 채 팔리지 않는다. 때문에 회전이 빠른 일본만화 단행본을 마구잡이로 찍어내서 매출을 늘리고 계산을 맞춘다.
  이러한 만화시장의 전반적인 문제들 이외에 회사 내 구조적인 문제도 만만하지 않다. 우리 회사의 만화편집부 인원 48명 가운데 여자가 29명, 이들 가운데 기혼자는 단 셋이다. 그것도 모두 올해 결혼한, 즉 아직 아이가 없는 이들이다. 사장은 공공연하게 결혼한 여자는 퇴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지난 3년 간 네 건 이상의 실적을 올렸다.

  '명작'이라 불리는 만화를 만들겠다는 나의 꿈은 이래저래 재가 되어가고 있다. 남은 것은 직장인의 피로와 생계요구뿐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공격 각도를 약간 비틀었다 뿐이지, 내 투지가 다 죽진 않았다. 지금 나의 목표는 '공정한 사람, 훌륭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꿈에만 매달리는 건 되지도 않을 일일뿐더러 옳지도 않다. 또 한 번의 여직원 구조조정 소문이 흉흉히 나도는 요즘, 훌륭한 시민이 되려는 나는 이 문제에 총대 매고 나서야 하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 중이다. 잘리면 어떡하지? 흐흐.  (2002_09_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