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의 여인들

2003.04.29 04:18

Ilyo Um 조회 수:2267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작품의 주인공이 주로 여자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는 씨익 웃으며 남자를 그리는 것보다 여자를 그리는 게 더 좋아서라고 답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놓고 자기도 쑥스러웠는지 이내 "그래도 소년과 남자가 주인공인 작품도 몇 개 있다"며 얼버무렸다. 그렇다. 그의 작품에는 여자들 비중이 제법 높다. 주인공이 소녀인 경우야 별로 특이하달 것도 없지만, 그가 그리는 '여인'들은 범상치 않다. 현대 사회에서 어른 여성의 역할 모델을 제시한다고 할까. 오는 25일 개봉하는 <모노노케 히메>에서도 제철마을의 수장 에보시를 한번 주시해 보기 바란다.

  에보시는 숲 속 제철마을의 수장으로서 강인한 지도자의 기개를 갖춘 여자다.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냉정히 판단할 줄 알며 때론 과감히 행동에 나설 줄도 안다. 보다 편리한 인간의 삶을 위해 산을 깎아 사철을 얻어 그것으로 철제 도구(주로 화약 무기...)를 만들고, 숲을 파괴하여 대장간의 연료로 쓴다. 마을에서는 여자들과 소외된 사람들이 모두 함께 일하며, 에보시는 그들 모두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대자연에게 그녀는 악랄한 적 일뿐이라는데…. 늑대 신이 키워서 그런지 영문 모를 행동으로 일관하는 산보다는, 목표와 의지가 분명한 에보시 쪽이 더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800만 명의 신들이 모여드는 온천장의 주인 유바바는 2등신 마녀다. 언뜻 욕심 많고 사악한 매부리코의 독재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 보시라. 특급 호텔 수준의 엄청난 규모의 온천탕을 경영하는데 그 정도 깡 없으면 아랫사람들이 따르겠나? 게다가 그녀는 일단 입 밖에 낸 말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킨다. 신의 하나는 확실한 양반이라니까∼.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
  크샤나는 토르메키아의 넷째 공주이자 제3군의 지휘관이다. '불의 7일간'이라는 큰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 대부분의 땅과 바다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고, 동물과 곤충들은 돌연변이로 태어나 인간은 살 수 없는 독기를 뿜어내는 '부해'에서 살아간다. 크샤나는 돌연변이 곤충들과 부해를 없애 인간의 영역을 넓히려 하고, 나우시카는 인간과 곤충, 나아가 모든 자연과 더불어 공생하는 길을 찾는다. 어떤 의미에선 에보시가 크샤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니, <모노노케 히메> 자체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확대완결편인 셈이다.

붉은 돼지(1992)
주인공 마르코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인 지나. 마르코는 1차대전 중 이탈리아 공군의 에이스 파일럿이었지만, 전쟁에 회의를 느껴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되어버렸다. 지나는 세 번 결혼했지만 남편을 모두 전쟁에서 잃었다. (마르코는 이 대목에서 "좋은 놈은 다 죽어…."라고 평했다) 아드리아해의 조그만 섬에서 호텔 아드리아노를 경영하며 가끔 바에 나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누님 타입으로, 거친 해적들도 그녀 앞에서는 마냥 수줍은 소년일 뿐이다.


코믹챔프 2003년 18호 게재.


덧붙임 1) 회사의 동원령에 부응하여 4월 26일 저녁 8시 반 목동 CGV에서 모노노케 히메를 보았다. 전에 자막없는 비디오로 봤을 땐 매우 지루했는데, 이번엔 내용이 유기적으로 얽히면서 훨씬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딱히 자막 탓은 아니다. 그때도 대충 내용은 다 알아들었으니까. 음... 내가 좀더 컸다고나 할까. (흥. 사이즈 얘기가 아냐)

덧붙임 2) 산에 대해 '영문 모를 행동'이라고 쓴 것에 대해 사과. 에보시와 비교하여 비중을 줄이려다 보니 표현이 오버됐다.

덧붙임 3) 에보시도 한 팔을 잃었다. 크샤나 패러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