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reshment] 나의, 아름다운, 잡지

2003.08.13 11:17

Ilyo Um 조회 수:2648

2, 30대 직장여성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입장이 동일한 여자친구다.

  영화 <싱글즈>를 보고 생각했다.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돈도 남자도 권력도 아니다. 독립한 직장여성이 스스로 잘 살기 위해서는 입장이 동일한 동성친구가 필수적이다. 그렇게 결론 내리고 주변을 하나 하나 검색해봤다.
  …망할, 난 28년 동안 뭐 하고 산 거지?

  그래, 내게는 여자친구가 필요하다. 팀장한테 갈굼당하고 열받아 있을 때 실컷 쇼핑이나 하자며 팔짱끼는, 가슴 작아서 불만이라는 남자친구는 진정 널 사랑하는 게 아니라며 그런 변태새끼는 차버리라고 도리어 화를 내는, 사는 게 서글퍼 눈물날 때 말없이 맥주 한 캔을 따서 건네주는, 그녀들과 소통하고 싶다. 교류하고 싶다. 관계 속에 있고 싶다. 그런 우리를 자축하는 잡지를 갖고 싶다. Bravo Her Life!
  그런데, 사람들의 삶에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영화나 소설, 만화 같은 창작의 산물이다. 정보지가 인생에 극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싱글즈> 이전에도 여성의 자아실현, 독립, 주체적인 사랑을 외치는 실용서와 학습지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것을 이슈화하고 광범위한 라이프스타일로 고무시킨 것은 결국 영화였다.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말하면 대개는 도망가 버린다. 좋다. 인스피레이션은 창작의 몫이다. 그러나 실천은 별개의 문제. 누군가 <싱글즈>를 지상에서 한 뼘쯤 떠있는 판타지라 했다. 판타지를 생활로 만드는 방법을 누군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어야 한다. 딱 한 뼘쯤이야, 그 정도는 정보지로도 커버할 수 있다.


대리만족이 아닌, 나 자신에 만족하고 싶다.

  자, 영화를 보고 필을 받긴 받았다. 그 다음은? 내가 느낀 필을 분석하고 싶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 가슴 벅찬 감동은 어디서 오는 건지 알고 싶다. 또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한다. 영화평을 읽고, 나와 같은 필을 받은 사람들을 찾고, 커뮤니티에 가입한다. 게시판을 훑고 맞장구쳐주는 회원들과 리플 놀이를 한다. 그러다가 차츰 필이 가라앉으면서 방문도 뜸해지고 마침내 즐겨찾기에서 지워진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스타는 저기에 있고, 나는 그들에 열광했다. 끝.
  사실, 지금도 직장여성들의 소통의 장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미디어 특성상 1차적 날(raw)정보들 위주여서 수다떨기는 가능할지언정 실천과 연대의 장으로는 적합치 않다. 인스피레이션의 원천을 해석하고 그에서 비롯된 추진력을 유지하며 실천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좀더 다듬어진 고급 정보가 필요하다. <싱글즈>, <Sex and the City>, <앨리 맥빌>, 폴 오스터, 무라카미 하루키, 자우림, 유시진, 김혜린, <나나>, <아름다운 시절>, 그들이 내 정서를 뒤흔드는 이유를 명쾌한 언어로 풀어내고, 그것을 내 생활에 직접 연계하는 법을 찾아서 밟아간다. 그렇게, 창작의 언저리에서 불멸의 한 귀퉁이를 건져내고 싶다.  


실례를 통해 구체적인 역할모델을 제시한다.

  존경하는 사람은? 김 구, 신영복.
  존경하는 여자는? …곰곰… …….
  초등학생처럼 위인전에 있는 인물 중 하나 골라서 제출한 것도 아니고, 나이 서른 가까이 되도록 고심하여 고른, 나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 리스트에 아직 여자는 없다. 인물이 없나? 아닐 거다. 이건 정보의 부재다. 뒤져보면 있을 게다. 실존 인물 중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중에, 나의 사표가 될 사람이. 그들을 만나고 싶다. 그들을 알리고 싶다. 실증 사례를 통해 구체적인 역할모델을 제시하는 것, 그것은 이 시대 여성지의 의무 중 하나다. 생생하고 멋진 여자들을 발굴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자!


되풀이되는 의문, 해답을 주마!

  "여자의 적은 여자?"
  사람이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는 거고, 세상의 반이 여자니까, 어쩌다가 미워하게 된 사람이 여자가 된 것뿐이라고, 그냥 확률 중 반일 뿐이라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넘기기엔 뭔가 되게 찝찝하다. 이 외에도, 문득 문득 부딪히는 의문들이 있다.
  "사랑을 안 해본 여자는 자기애에 갇힌 것일까?"
  "여자와 남자의 우정이 가능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쇼핑밖에 없나?"
  <Sex and the City>에서 성 칼럼니스트 캐리가 자신의 칼럼을 의문문으로 시작하듯,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봤을 의문에 신뢰할 만한 답변을 제공하는 FAQ 리스트를 작성해 나간다.